'축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09.30 12년 연속 흑자 낸 J리그 구단 사장의 철학
  2. 2014.09.28 '승부사' 슈틸리케에게 희망을 거는 이유
  3. 2014.09.28 정치인 여러분, 스포츠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입니까
  4. 2014.09.28 잊을 수 없는 이동국 경기 10선

12년 연속 흑자 낸 J리그 구단 사장의 철학



일본 프로축구 반푸레 고후 우미노 가즈유키 회장은 68세다. 그러나 그는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비전을 가졌다. 최근 경향신문 초청 한일축구산업교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해서도 첫날 잠자리에 일찍 들지도 않은 채 새벽까지 축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고후는 인구 20만이 채 되지 않은 작은 도시다. 그곳 축구단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간 4억엔(약 42억원)의 부채 때문에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평균관중도 600명 정도였다. 그렇게 망해가는 구단을 살린 것은 시민들이었다. 다음은 우미노 회장과 식사와 차를 마시면서 3시간 정도 나눈 이야기다. K리그 프런트와 선수단에 모두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과거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구단을 살렸나


 "축구단 사람들은 자신들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게 팬들 덕분이다. 서포터스들이 자발적으로 구단을 도왔다. 돈을 내지 않아도 유니폼을 무료로 세탁해주겠다, 얼음을 제공해주겠다 등식으로 말이다. 팬들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나서준 덕분에 우리는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어려울 때 받는 도움과 사랑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죽어가는 팀에게 미음을 먹이고 팔다리를 주물러 일으켜 준 것은 팬들이다. 축구단은 은혜를 갚아야 하다."


 -지역봉사활동을 무척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우리 구단의 최대 원칙은 가능한 한 지역 공헌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축구클리닉, 교통안전지도, 농사짓기, 장애아동 돕기, 학교방문, 병원방문, 목욕봉사 등 모든 게 지역 밀착사업들이다. 우리는 축구만 잘 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지역밀착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선수들만이 고후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나는 선수니까 축구만 잘 하면 된다' 고 생각하는 선수,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영입할 의사가 없다."


 -초기 선수단의 반발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러나 많이 달라졌다. 특히 우리 구단은 매년 대졸·고졸 신인 선수들이 보면 제일 먼저 시키는 게 지역봉사다. 이들은 축구를 상당히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코가 높은 상태로 프로에 입문한다. 이들에게 구단이 처음으로 요구한 것은 노인정 목욕 봉사다. 노인정에서 어르신들 목욕을 직접 시키면서 하루 종일 봉사하면 콧대가 낮아지는 게 아니라 아예 없어진다. 그게 몇 년 동안 계속되면 선수단 전부 지역 활동에 거부감 없이 선뜻 나서게 된다. 스포츠는 일반적으로 학원 스포츠와 기업 스폰서로 나뉜다고 하지만 우리가 축구하는 것은 지역스포츠다."


 -무슨 활동을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정신질환자 병동도 간다. 돌보는 일손이 부족한 곳이라 선수들이 가면 무척 반긴다. 선수단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봉사에 나선다. 자원봉사자는 봉사를 하면 경기를 무료로 관전할 수 있도록 해줬다. 우리는 정신질환자 병원으로 가서 축구를 가르쳐 축구팀을 만들어 대회도 치러봤다. J리그는 각 구단 팬들에게 설문조사를 한다. 구단이 사회공헌을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있다. 그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하는 팬 비중이 가장 높은 구단이 바로 우리 구단이다."


 -선수들에 대한 평가기준도 경기력 뿐만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 팀 성적, 출전시간, 연습에 참여하는 태도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선수들과 연봉을 협상하지 않는다. 지역봉사활동을 얼마나 했나, 자기 유니폼 등 상품판매수익은 얼마나 났나 등을 모두 고려해 연봉을 결정한다. 우리는 선수들이 얼마나 지역봉사를 했는지를 그래프로 그려 공지한다."


 -구단 1년 예산은 어느 정도 되며 선수단 인건비의 비중은 얼마인가.


 "J리그 구단의 1년 평균 예산이 30억 엔 정도인데 우리는 15억 엔이다(참고로 유니폼 가슴 광고 1억 엔). 그 중 선수단 급여는 감독, 코치를 모두 포함해 7억5000만 엔이다. 우리는 J리그에서 연봉이 낮은 편이다. 시미즈는 평균 예산이 30억 엔 정도다. 선수 연봉은 시즌 전체 경기수의 90% 정도를 뛴 간판선수는 4000만 엔, 75% 출전 선수는 3000만 엔, 45% 출전선수는 1500만에서 1800만 엔 정도다."


 -적은 예산으로 구단을 운영하면 2부로 강등될 수 있다는 걱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1부에 잔류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끌어다가 썼다고 가정해보자. 1부에 남아도 그건 큰 재정적인 부담이 되는데 만의 하나 2부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 때는 다시 1부로 승격하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기반조차 없어지게 된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 구단은 적자가 나면 팀이 해체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2부로 떨어져도 흑자가 나야 희망이 생긴다. 나는 시즌 초 직원들에게 1년 수입과 비용을 짜게 한다. 수입은 최소로, 지출은 최대로 잡고도 수익이 나도록 계획한다. 그러면 수익은 점점 들게 되고 지출은 계획보다 줄게 된다. 그러면 이익은 더 난다. 그게 고후가 12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는 비결이다. 주빌로 이와타는 경기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많은 돈을 쓰는 구단이다. 그런데 그곳이 2부로 떨어지지 않았나. 축구는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돈을 적게 쓰는 구단이 부자구단을 이기는 게 축구의 최대 묘미라고 생각한다."


 -구단 스폰서가 400여개에 이른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모았나.


 "2000년 스폰서는 15개 정도였다. 그러나 그게 지금은 400개에 이른다. 큰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 작은 회사, 동네 가게들이다. 20만 엔 정도를 후원받고 그걸 입장권 등으로 되돌려준다. 작은 식당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그 식당 로고, 소개 등을 부채에 실어주기도 한다. 지난해 부채 공고를 구입한 상점이 무려 750개다. 고후는 온천이 유명하기 때문에 온천이 있는 상대팀이 고후로 와서 경기를 치를 때는 온천매치를 벌여 온천 관계자들도 초청했다.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팔자는 심정으로 뛰고 있다."


 -스폰서가 많으면 구단 재정은 아주 안정적일 것 같다.


 "처음에는 굵직한 기업이 후원하는 구단이 많았지만 지금 J리그 구단들은 대수 스폰서로 대부분 운영된다. 도쿄 베르디는 일본TV가 매년 30억 엔을 지원해 구단을 운영했지만 일본TV가 손을 떼니까 구단은 망하기 일보 직전에 몰렸고 지금도 희망을 찾기 쉽지 않다. 스폰서가 많으면 한 두 개가 없어져도 팀 재정에는 큰 문제가 없게 된다. 그리고 후원금이 크지 않기 때문에 후원사 모집도 수월하다. 관중도 평균 1만2800명 정도다. 그 중 8000명이 연간 회원권을 산다."


 -구단 직원들은 몇 명이나 되나.


 "다 합해 20명이다. 그 중 7~8명이 영업사원이다. 이들은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해 스폰서를 잡아야 한다.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그래프로 그려 공지한다. 지금껏 자신의 목표를 초과달성하지 못한 직원은 거의 없었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면 보너스도 준다. 나는 매년 초 모든 구단 직원들에게 구두를 선물한다. 구두 굽이 많이 달면 달수록 축구단 수입이 늘어단다는 생각으로 주는 선물이다. 그 덕분에 우리 경기장은 J리그 구단 중 아마도 가장 많은 스폰서 광고가 경기장에 마련된 구단일 것이다. 볼보이석까지 광고를 붙일 정도다. 그리고 리그가 다 끝나면 신문광고를 통해서 스폰서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스폰서 이름이 모두 나오기 때문에 기존 스폰서들도 좋아하고 스폰서가 아닌 다른 가게, 상점도 스폰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나."


[글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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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슈틸리케에게 희망을 거는 이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시절 화려했다.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뛰었다. 1972년부터 1988년까지 리그, UEFA컵, 유러피언 컵, 코파 델 레이 등에서 우승컵 14개을 들어올렸다. 독일국가대표로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한 번, 준우승 한 번을 했고 1982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까지 뛰면서 2위도 해봤다.


 반면 성인팀 감독으로서는 별로 이뤄놓은 게 없다. 대표팀은 스위스와 코트디부아르를 이끌었다. 프로팀은 그자막스(스위스), 발트호프 만하임(독일), 알메이라(스페인), FC 시옹(스위스)을 지휘했지만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카타르 프로팀 감독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경력으로 보면 유럽에서 활약하다가 아시아로 와서도 재기에 성공하지 못한 지도자다. 선수로서는 꽤 성공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유럽 프로팀 감독, 독일축구대표팀 코치를 하다가 아프리카, 카타르로 가서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냉정하게 봐서 유럽에서는 이미 용도폐기가 된 지도자로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데이터가 있다. 그건 바로 스위스대표팀과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이끌 때 낸 성적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1989년부터 91년까지 스위스대표팀 감독으로 있었다. 1954년생인 그가 마흔 살도 안 됐을 때다. 재임시절 스위스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스위스는 당시 유럽예선 7조에서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포르투갈에 이어 조 4위(2승1무5패)에 머물렀다. 그게 과연 슈틸리케 감독의 책임일까. 슈틸리케 감독은 1989년 6월21일 부임했다. 그 때까지 스위스는 월드컵 유럽예선 8경기 중 4경기를 치른 상태였고 성적은 1승3패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해 치른 4경기에서는 1승1무2패를 기록했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이 월드컵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슈틸리케 감독이 못해서 스위스가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스위스대표팀을 이끌면서 거둔 성적은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13승5무7패(48득30실)다. 게임당 승점은 1.24점이다. 이는 역대 스위스대표팀 감독 중 로이 호지슨 감독(21승10무10패·게임당 1.27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스위스대표팀을 이끈 노장 야콥 쿤 감독도 1.10점에 불과했다. 이들 3명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이 마흔 살도 안 돼, 그것도 자신이 처음으로 감독이 돼 거둔 성적 치고는 좋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2006년 9월14일부터 2008년 1월7일까지 코트디부아르 감독을 맡았다. 부임시기는 코트디부아르가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후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재임기간 동안 A매치 6연승을 두 차례 하는 등 16승6무6패(57득22실)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28경기에서 승점 54를 따냈다. 무려 게임당 평균 1.93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슈틸리케 감독이 코트디부아르 사령탑에서 내려간 것은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 때문이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2주 앞둔 상황이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 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을 대신해 수석코치 제라드 질리를 임시 감독으로 앉혔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는 네이션스컵 조별리그에서 3무로 탈락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아들은 2월1일 사망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코트디부아르로 돌아왔지만 얼마 안 돼 팀을 떠났다. 팀을 다시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보도가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성인 팀을 맡으면서 우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표팀을 이끌면서 거둔 성적은 꽤 괜찮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슈틸리케 감독이 승부사적인 기질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슈틸리케 감독은 프로팀에 비해 국가대표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입국 기자회견에서 "경기가 끝나고 팬들은 점유율이 얼마였는지 패스와 슈팅이 몇 번이었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승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승부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걸 성적으로 보여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세 이하, 20세 이하, 21세 이하 팀이었다. 그가 부임했을 당시 그가 지도한 팀이 좋은 성적을 낸 것은 2002년 19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낸 것은 없다. 그러나 필립 람처럼 슈틸리케 감독이 키운 어린 선수들이 요즘 독일축구 전성기를 이끌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은 청소년대표팀을 오래 맡았다는 점이다. 독일 축구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많은 돈과 많은 노고와 정성을 들여 외국에서 축구대표팀 감독을 데려와 4년 계약을 맺었다. 국가대표팀뿐만 아니라 유소년축구, 지도자육성, 여자축구 등 한국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온 점은 반가운 일이다.


 다음은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에 온 뒤, 오기 전 독일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했다.


 "한국이 다시 축구 강국으로 도약할 희망이 없었다면 감독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혼을 울려야 한다. 한국이 내게 마지막 팀이 될 것이다. 나는 아내와 한국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면서 한국축구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우선 첫 번째 목표는 며칠 뒤 집으로 돌아가서 짐을 싸고 돌아와 K리그와 13세 이하 등 선수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문이 닫히면 집에 들어갈 수 없다. 한국에 어떤 전통, 문화, 정신력이 있는지 살펴보겠으며 그게 내가 향후 몇 개월간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다. 승리의 요인은 어떤 날은 티키타카일 수도, 다른 날은 공중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해야 한다. 독일 축구가 정답은 아니다. 독일과 한국의 좋은 점을 찾아 고민해보겠다. 한 경기에서 졌다고 해서 팀이 죽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월드컵에 8번이나 출전한 '살아있는 팀'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어떤 약을 처방하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이 팀은 젊고 미래가 있으니 지켜봐 달라."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인터뷰 막판 발언 기회를 따로 요청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외국인이 새로 오면 편견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쁜 예로 어떤 지도자는 돈이나 다른 명예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갈 때도 있다. 나는 모든 경기를 이기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일하고 내 경험을 토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 드리도록 노력할 것은 약속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이번 한국대표팀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만의 하나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의 지도자 인생도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국 축구가 브라질월드컵 부진 이후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외국에서 감독을 찾은 것처럼 슈틸리케 감독도 지도자로서 모든 걸 마지막으로 불사를 기회를 한국에서 잡았다. 물론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둘의 욕구가 서로 어울린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글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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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여러분, 스포츠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입니까



스포츠가 정치인들 눈에는 참으로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한구 국회의원(새누리당 대구 수성갑)이 대표로 발의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부족한 지방 세수를 메우기 위해 스포츠토토 수익금에 세금 10%(레저세)를 붙인다는 내용이다. 그게 통과되면 지방교육세(4%), 농어촌특별세(2%)가 추가로 부가돼 총 16%가 스포츠토토 수익금에서 빠져나간다. 그게 연평균 4000억 원이 넘는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명도와 인지도 제고 등을 위해 스포츠를 이용해먹을 때는 엊그제인데 이제는 엉뚱한 이유로 스포츠의 주요재원을 크게 축소시키려하고 있다. 스포츠토토는 스포츠팬들이 낸 돈으로 운영되고 국민체육진흥기금도 그 돈으로 마련된다. 이걸 국회의원이 당초 취지와 어긋하게 이용하려는 데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스포츠토토로 인해 마련된 기금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다. 그걸 일일이 거론하는 것보다는 정부 체육예산과 국민체육진흥기금의 비중을 비교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2012년 체육백서(문화체육관광부 발간)를 보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정부예산의 0.87% 밖에 안 된다. 체육부분 예산만 보면 그 비중은 0.06%로 크게 하락한다. 정부는 입으로는 체육이 중요하다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체육을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독일 등 선진국들은 체육예산이 최소한 정부 예산의 1% 안팎은 된다.


 턱없이 부족한 체육예산을 메우는 게 바로 토토 수익으로 마련되는 국민체육진흥기금이다. 2012년 체육백서를 보면 2012년 정부의 체육예산은 1516억 원에 불과하다. 반면 국민체육진흥기금은 7344억 원이다. 국고 예산의 5배에 육박하는 엄청난 액수다. 그 돈은 전문체육·생활체육·학교체육발전에 쓰여왔다. 동네 국민체육센터 등 국민들이 즐기는 다양한 운동시설 등을 짓는데도 이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또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프로경기 개최단체와 구단에 지원금까지 배분돼 유소년 육성에 쓰인다. 장애인스포츠 지원뿐만 아니라 빈곤층 지원 등 각종 나눔행사에도 쓰이는 것은 물론이다. 레저세가 부과되면 자금도 크게 줄어들고 결국 우리나라 체육 전반적인 구조와 상황이 무척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체육진흥기금은 국민들, 특히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그 돈의 절반이 배당금으로 베팅 참여자에게 배분되고 나머지 절반이 운영비, 기금 등으로 쓰인다. 이 돈을 국회의원 마음대로 지방세수로 돌리는 것은 한국스포츠를 죽이는 일과 다름이 없다. 세수를 늘리려면 탈세, 범죄 등 법을 어기는 사람들로부터 벌금을 철저하게 걷는 등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야지, 스포츠 발전에 쓰기 위해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다른데서 부족해진 세원으로 삼으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혹자는 "체육계가 정부를 상대로 체육예산 자체를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그걸 이뤄내야 한다"면서 "더 이상 기금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정부는 체육예산을 늘려달라는 체육계의 지속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외면한지 오래다. 체육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체육의 존재가치를 가볍게 보고 있는 정부에게 요구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레저세 법안은 지난 2010년 김정권 전 의원이 동일한 내용으로 발의했다가 체육재원 축소 등에 대한 문제가 당내에서 제기되다 자진 철회한 적이 있다. 다시 거론된 이번 법안도 무조건 철회돼야한다. 대신 체육예산을 조금 더 늘려달라고 요구해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요구하기는커녕 팬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마련된 재원을 본래 취지와 달리 자신의 표심을 얻기 위해 자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 법안이 만일 통과된다면 이 법안을 발의한 정치인들의 이름을 모두 밝히겠다.


[글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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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이동국 경기 10선


①1998년 5월16일 평가전(자메이카)=19세 이동국의 데뷔전이다. 차범근 감독이 어린 그를 뽑았다. 찬반 논란도 있었다. 물론 얼마나 대단한 신예일까하는 호기심도 많았다. 당시 이동국은 79분 교체투입돼 10여분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간도 너무 짧았다. 이동국이 들어가면서 교체아웃된 건 황선홍이었다.


②1998년 6월20일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네덜란드)=이동국은 논란 끝에 월드컵 대표에 뽑혔다. 이동국은 나이도 어렸고 월드컵 예선을 뛰지 못했다. 그래서 적잖은 팬들은 차범근 감독의 이동국 선발을 비판했다. 이동국은 네덜란드전 77분 서정원 대신 투입돼 대포알 슈팅을 날렸다. 한국은 0-5로 참패했지만 이동국은 차세대 희망으로 떠올랐다.



↑사진 = 스포츠경향DB


③1998년 10월31일 19세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일본)=이동국은 김은중과 투톱을 이뤘다. 조별리그부터 골을 터뜨리며 팀을 결승에 올렸다. 결승전 상대는 일본이었다. 이동국은 특유의 터닝슈팅으로 2-1 결승골을 뽑았다. 이동국은 한국축구의 미래로 다시 한 번 주목받았고 안정환·고종수와 트로이카 시대를 활짝 꽃피웠다.


④2000년 10월23일 레바논 아시안컵 8강전(이란)=이동국은 연장 전반 10분 2-1 역전 골든골을 넣었다. 4년 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게 2-6으로 완패한 치욕을 되갚은 골이었다. 비록 한국은 3위에 머물렀지만 이동국은 무릎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득점왕에 올랐다. 성인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기량을 갖췄음을 입증한 대회였다.


⑤2002년 10월10일 부산아시안게임 4강(이란)=이동국은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고 싶었다. 이동국은 이란전 후반 14분 김은중 대신 교체 투입됐지만 적잖은 찬스 속에서도 골을 넣지 못했다. 결국 골대를 세 번이나 때리고도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한국은 승부차기 3-5로 패했다. 당시 이영표가 실축했다. 이동국은 군입대(상무 부대)했다.


⑥2004년 12월19일 평가전(독일)=독일은 정예멤버로 부산에서 한국과 맞붙었다. 한국은 예상을 깨고 3-1로 이겼다. 이동국은 1-1인 후반 26분 박규선의 크로스가 수비수에 맞고 흐르는 것을 발리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뽑았다. 올리버 칸은 "막을 수 없는 슈팅"이라고 말했다. 그 골은 그해 국내축구팬들이 꼽은 최고 골로 선정됐다. 이동국의 인생골이다.



↑사진 = 스포츠경향DB


⑦2006년 4월5일=프로축구(인천 유나이티드)=잊고 싶은 경기다. 독일월드컵대표팀 승선이 사실상 확정된 이동국은 경기 도중 동료의 패스를 받으면서 몸을 돌리다가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이동국은 독일로 가서 수술을 받았고 독일월드컵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경기에는 뛰지 못해도 국민들과 함께 응원하겠다"는 이동국의 KT 광고는 대박을 쳤지만 이동국은 씁쓸했다.



⑧2007년 2월24일 프리미어리그 데뷔전(레딩)=포항에서 뛰다가 미들즈브러로 간 이동국은 이날 85분 야쿠부와 교체투입돼 영국 그라운드를 처음으로 밟았다. 슈팅 하나도 때리기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이동국은 기회를 엿보다 회심의 왼발 슈팅을 때렸다. 그런데 그게 골대를 맞고 말았다. 그게 들어갔다면 이동국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⑨2007년 10월1일=프리미어리그 8R(에버튼)=미들즈브러 소속으로 치른 경기 중 가장 안타까웠다. 이동국은 전반 24분 오른쪽 크로스를 골문 앞에서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헤딩 지점과 골대까지 거리는 1m 안팎이었다. 골키퍼가 막기에는 슈팅이 통렬했고 골키퍼 위치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렸다. 영국 언론은 "끔찍한 실수(Terrible miss)"고 비판했고 이동국은 영국 언론으로부터 시즌 최악의 공격수 중 한명으로 지목됐다.



↑사진 = 스포츠경향DB


⑩2010년 6월27일 남아공월드컵 16강전(우루과이)=우중 경기가 진행됐다. 이동국은 0-1로 뒤진 후반 16분 미드필더 김대성 대신 투입됐다. 그리고 이동국은 1-2로 뒤진 후반 43분 박지성의 스루패스를 슈팅으로 연결했다. 슈팅은 골키퍼 가랑이 사이를 뚫고 골문 안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볼은 고인 빗물 때문에 스피드가 떨어지면서 골라인을 넘지 못했고 그걸 수비수가 걷어냈다.


[글 | 김세훈 기자]

Posted by 움직이는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