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진 연출, 8년의 산고 끝에 뮤지컬 ‘보이첵’ 선보여...“세계시장 공략할 수 있다”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눈매는 날카로웠다. 인터뷰 내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명성왕후> <영웅>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역사를 써온 뮤지컬 제작·연출자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66)가 8년 동안 준비해 온 뮤지컬 <보이첵>을 무대에 올렸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 에이콤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3년 창작뮤지컬 <명성왕후> 북미 공연으로 한국어 뮤지컬의 한계를 느낀 윤 대표는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며 글로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는 독일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의 희곡 <보이첵>을 선택했다. “주제의 보편성이 있으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보이첵>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보이첵>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보이첵>을 만들었다. 극본도 영어로 먼저 썼다. 정규 음악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싱잉 로인스가 극본과 작곡을 맡았다.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저녁에는 펍에서 노래를 부르는 밴드다. 그는 “싱잉 로인스의 곡들은 원석에 가깝다. 날 것 같은 느낌이다”며 “보이첵과 마리의 심성에 가장 근접한 곡이다”라고 극찬했다. 한국 초연에 앞서 단조로운 템포의 곡들은 편곡을 하고 새로이 곡을 만들어 넣기도 했다.


해외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작품이지만 한국적인 색채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씻김굿을 연상시키는 메타포 장치를 했다. 극의 절정에 다달아 보이첵과 마리의 장례식에 동네 아낙들이 꽃가루를 뿌리며 원혼을 달래는 장면을 넣었다. 그는 “관객들이 죽음의 장면을 안고 돌아가는 것은 정서적으로 잔인하다”며 “보이첵과 마리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보이첵>은 보이첵이라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좇아가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배우의 역량이 이 작품의 퀄리티를 좌우한다. 윤호진 대표는 보이첵 역을 맡은 김수용 배우를 극찬했다. 보이첵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기획단계부터 김수용을 염두에 두고 <보이첵>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보이첵은 연약하고 마른 이미지다.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루저’ 같은 이미지다”라며 “외모로 완벽한 보이첵인 김수용에게 내면을 채우는 작업을 주문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꽃다현’ 김다현은 스스로 몸을 망가뜨리고 있다. 하루 한 끼는 완두콩을 먹으며 체중감량을 했다. 물리적으로 보이첵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 긴 호흡으로 본다. <명성왕후>를 10년 동안 고쳤다. 또 다른 10년을 바라보고 고치고 있다. “창작 뮤지컬 제작은 단기적인 성과를 보고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작품의 질이 중요하다”며 “보편성이 있는 좋은 작품은 관객들이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이첵>은 다른 대형 뮤지컬에 비해 입장료를 싸게 책정했다. 그는 “뮤지컬의 티켓 가격이 한국의 경제수준과 맞지 않는다. 공연 막바지로 갈수록 할인을 하는 구조다. 결국은 가격은 비슷해진다”고 티켓 가격이 저렴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초연에서 이익이 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자만 나지 않기를 바랐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무대세트를 재활용하기도 했다. 


그는 “성공의 관건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시간을 못 느끼게 하느냐다”라며 “물리적 시간이 상징적 시간으로 바뀌도록 만들기 위해서 진짜 보이첵이 되고, 진짜 마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마지막 3곡을 들으면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며 명품 뮤지컬이 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보이첵>은 사랑하는 아내 마리, 아들 알렉스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매일 완두콩만 먹어야 하는 생체실험에 지원한 보이첵이 아내의 부정을 알고 광기에 사로잡혀 결국 파멸하게 되는 처절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1월8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4만~8만원. 문의 02-708-5001


[글 | 김문석 기자] 

Posted by 움직이는 화가